본문 바로가기
영화리뷰

툴리-우아한 편견, 엄마라는 이름

by 쓰달 2023. 2. 10.

인생을 하청 맡길 수 없는 이유

여전히 어린 첫째 딸과 남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성장 중인 둘째 아들, 그리고 이제 막 태어난 셋째 막내와 육아 전쟁을 치르고 있는 마를로는 늦은 밤까지 게임에만 빠져있는 남편에게 짜증 낼 의지조차 없다. 그 또한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무게가 클 거라는 생각으로 그녀의 지친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셋째 출산 전 부유한 오빠 집에서 가족 모임을 한다. 오빠는 지쳐 보이는 마를로에게 보모를 고용해주겠다고 제안했지만, 마를로는 "인생을 하청에 맡길 수는 없잖아."라며 어린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지 않겠다는 의지로 거절한다. 만삭의 몸으로 카페에서 디카페인 커피를 주문하자 한 할머니께서 디카페인도 카페인이 조금은 들어있다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을 건다. 잠시 후, 직원이 "그래도 드릴까요?"라는 말로 할머니와 동일한 선상에서 질책하듯 질문을 하고, 마를로는 디카페인 커피 마시는 것조차 포기한다. 마를로는 세 명의 어머니가 있었던 불운한 어린 시절 때문에라도 자식들만큼은 누구 손에 맡기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당신을 싫어하지 않아요. 그저 여기가 맞지 않을 뿐이죠.”라며 둘째 아들 조나의 제적을 강력히 요구하는 교사처럼 각종 육아서에서 아이는 뱃속에서부터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도록 엄마가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임신 이전의 삶이 어떠했던 임신 이후는 오로지 아기의 건강한 출산과 정서를 위해 육아서 지침대로 따라야 진정한 엄마라고 강조한다. 심지어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잘못된 양육으로 자랐다면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면서 양육하라고 엄마의 역할을 강요한다. 많은 산모가 임신 직후 병원에서 듣게 되는 말이 "초기이니 안정을 취하라"라는 내용이다. 병원에서 듣지 않았다 하더라도 태아에게 무리가 될까 봐 움직이는 것을 조심하고, 회사 업무도 줄이거나 휴직계를 쓰거나 그만두는 일도 종종 있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바에 의하면 산모가 임신 이전과 다르게 운동량을 줄이는 건 태아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많은 산모는 지금도 여전히 태아를 위해 움직임을 줄이고 이전과는 다른 임신 기간을 보내고 있다. 영화는 내 아이는 내가 키워야 하고, 내 아이를 위해서는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이상화된 엄마 상을 씌우는 사회적 시선과 그 안에 갇힌 마를로의 모습이 "인생을 하청 맡길 수 없다"는 마를로의 말로 투영된다.  

인생을 하청 맡길 수 없는 또 다른 이유

마를로의 오빠도 가정을 이루고 한 아이를 키우고 있다. 오빠 가정은 마를로 가정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오빠의 아내도 한 아이의 엄마인데 외모도 흐트러짐 없고 밝으며 여유롭다.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아이가 한명이라 다른 거라고 짐작할 수 있겠지만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그렇게 판단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유가 분명하게 나와 있다. 발달이 남다른 동생의 아들이 사립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것도 오빠가 학교에 기부금을 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만큼 오빠는 경제적으로 부유했고, 보모가 아이의 육아를 전담하고 있다. 이후 마를로도 오빠 덕분에 보모를 집으로 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를로는 오빠의 아내처럼 여유로울 수 없다. 이유는 단순히 보모의 유무보다도 마를로와 그의 남편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경제적인 영향이 상당히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 해피엔딩이라고는 하지만 사회적 시선이나 그녀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문제는 끌어안은 채 "나는 우리를 사랑해"라는 마를로의 의지로 영화는 반쪽의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된다. 

 

시작과 끝에선 조나

둘째 아들인 조나의 온몸을 솔로 마사지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남들에 비해 예민한 성장 과정을 겪는 조나의 정서 안정을 위해 유튜브에서 찾아낸 방법으로 치료하는 장면이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게 진짜 도움이 되냐고 묻는 조나는 "엄마랑 같이 있는 게 좋아. 솔이 없어도 될 것 같아."라며 엄마를 끌어안는다. 아들의 치료를 위해 지칠 대로 지친 상황 속에서도 희생적으로 솔을 문질렀던 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걸 반증이라도 하듯 그런 힘을 빌리지 않고도 모자간 포옹으로 정서적 안정을 누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 간략한 정보

제목 : 툴리(Tully)
감독 : 제이슨 라이트만
배우 : 샬르리즈 테론, 맥켄지 데이비스 외
개봉 : 2018.11.22
영화는 제이슨 주노, 영 어덜트에 이어 제이슨 라이트맨 감독과 디아블로 코디 작가가 3번째로 함께한 여성영화이다. 영화는 크게 흥행하지는 못했지만, 평점은 8점 이상으로 높은 편으로 호평받았다. 이 영화의 주인공 샤를리즈 테론은 작품 시나리오를 읽고 바로 출연을 결심하고 영화를 위해 22kg 살을 찌우는 열정까지 보이며 영화에 임했다.

댓글